피카소의 세번째 연인이자 첫번째 부인이었던
올가 코클로바(Olga Khokhlova).
1891년에 태어난 올가는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였습니다.
1917년 파리에서 피카소는 발레 공연 ‘Parade’에서
의상과 무대를 담당하면서 올가를 만났다고 해요.
둘은 유럽 순회공연을 함께 다니며 사랑에 빠졌고
10살의 나이차이를 극복하여 1918년 스페인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후 올가는 올가 피카소가 되죠.
하지만 많이 알려진 대로 피카소의 여성편력은 아주 유명한데요.
올가와 결혼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피카소는
17세의 어린 마리-테레즈 발테르(Marie-Thérèse
Walter)와사랑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올가는
아들 파울로(Paulo)를 데리고 프랑스 남부로 떠나버리죠.
이혼을 원했지만 피카소가 재산이 분할되는 것이
못마땅해 거부하고 맙니다.
그때문에 올가는 1955년 암으로 죽을 때까지
피카소의 부인으로 남게 되었답니다.
피카소는 평생 6명의 뮤즈를 사랑했다고 하는데요.
올가 역시 그들 중 한 명으로 두번째 뮤즈였습니다.
올가는 러시아 장교의 딸로 남부럽지 않게 자라며
발레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지만 열정만큼
실력이 뛰어난 발레리나는 아니었죠.
사랑한 남자가 세상이 다 아는 ‘바람둥이’였기에
참아야 하는 고통은 대단했을 거예요.
아무리 천재이고 세계 최고의 부와 명성을
지닌 화가라 해도 한 여자, 어머니, 아내의 입장에서
피카소는 그저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였으니까요.
한편, 피카소가 공공연하게 가장 사랑했던 뮤즈는 마리-테레즈
라고 합니다. 피카소는 600점이 넘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죠.
올가 역시 피카소와 사귀던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다양한 모습이 여러 초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초상화에 비춰진 올가의 모습은
왠지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입니다.
그녀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됩니다.
비록 올가의 결혼생활이 불행하긴 했으나
피카소의 첫 부인이란 타이틀과 자손들의 피카소 재단 설립
덕분에 사후에도 그녀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이 쏟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