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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th Special Exhibition : Blooming, Water Forest아름답고 울창하게



    도시의 자연. 자연의 도시. 풀림의 안팎은 나무뿌리에 물이 스미듯 전위한다. 도시에 조성된 자연은 자연일까? 날것의 자연은 우리가 진정 만끽하는 자연일까? 풀림 안에 공명하는 초록은, 그리하여 그 안에서 우리가 감지하는 세상은 더없이 일상적이기도, 모쪼록 일탈적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의 안팎이 각각 면한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본능이 공명하는 곳은 여기 첨단의 도시일까, 아니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초록 속일까. 넌지시, 풀림이 물었다.


    Editor Yi, Hyun Jun

    Director ANOUK




    As an Artist

    풀림. 최혜림 작가가 캔버스에 풀어온 초록이란 뭘까. 대저 풀과 꽃일까. ‘힐링’이나 ‘치유’처럼 닳고 닳은 레퍼토리일까. 다만 ‘자연’에서는 풀림 작가의 마음을 온전히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근 3년간 모 기업 의류 브랜드의 컬러리스트로 일하다가 퇴사를 결심했다.
    색을 다루는 일은 정말 재밌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죠.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을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할 수 있을까. 답은 ‘노’였어요. 저는 얇고 길게 일하고 싶거든요. 끝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했죠. 더 늦기 전에 그림을 그리며 살기로 결심했고 회사를 나왔어요. 지금 제가 어떤 반열에 오르거나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지만 제 한 선택에 대해선 어떤 후회도 없어요.

    초록은 곧 계절이 아닌가. 풀림의 계절이라면.
    "계절마다 초록은 미묘하게 달라요. 옅은 연둣빛인데 은은하게 반짝임이 감도는 초록은 막 봄이 시작할 무렵에 볼 수 있어요.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초록. 봄 문턱을 지나서 햇빛을 많이 받으면 이파리가 두터워지면서 말 그대로 어른이 된 것처럼 농도 있는 초록이 보여요. 그렇게 여름이 오고 한 차례 장마도 지나가고 하면 아주 묵직하고 짙은 녹색이, 가을이 깊어지고 낙엽으로 변하면서 나는 원숙한 초록색도 있죠. 옅은 갈색빛을 띠는. 그중에서도 저는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시기의 초록을 가장 좋아해요.”

    풀림의 풍경 속에서 자주 모네가 읽힌다. 아끼는 동시대 작가도 있나.
    제가 무심코 수집하는 이미지들 가운데에도 모네의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동시대 작가 중에는 김현수 작가님의 시선과 화풍을 참 좋아해요. 저의 초록과는 조금은 다른 결로, 동양적인 시선으로 당신만의 풍경을 창조하는 작가님이세요. 김수현 작가님이 표현하는 플랫한 풍경들이 아름다우면서도 상징적이예요.

    앞으로 5년 또는 10년, 근미래의 풀림.
    또렷한 레퍼런스가 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풀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심상과 이미지를 지닌 작가. 현재까지는 제 작업 스타일과 표현 범주가 정립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흩어져 있다고 보거든요. 나중엔 누군가 제 그림을 보면 즉각적으로 풀림을 떠올릴 수 있는, 저만의 화풍을 가진. 

    그런 걸 물으며 옆구리를 찌르는 인터뷰다. 돈 많이 버는 작가가 되고 싶나.
    네, 많이 벌고 싶어요.(웃음) 제 그림을 원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돈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제가 생각하는 건 아낌없이 재료를 살 수 있는 만큼이에요. 물감이 너무 비싸서 긍긍했던 때가 있거든요. 그림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고 싶다면 제겐 그거예요. 부족함 없이 재료를 사서, 계속해서 원하는 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태.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그릴 건가.
    물론 작업하는 과정이 내내 즐거움만 가득한 건 아니지만, 제가 이토록 몰입할 수 있는 일은 아마 그림밖에 없을 거예요. 인내심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살면서 무엇 하나 진득하게 붙잡고 했던 적이 많지 않은데, 유일하게 제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집중하는 일이 바로 그림 그리는 거예요. 그런 그림을 이렇게 자유롭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제 자존감을 높여주는지도 몰라요. 

    그림이 뭐길래.
    놀이고 습관이에요. 제 삶의 지당한 행위. 업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죠. 그림은 그러니까, 말과 행동 같은 수단 이외에 저라는 사람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래서 제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기도 해요.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모든 순간이 신나요. 제 이전 작업실이 과거에 아이들 무용 학원이었던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이 있어요. 제가 작업하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에 있는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제가 웃고 있어요. 몰랐어요, 제가 그렇게 웃으면서 그림을 그리는지. 




    About Work

    말쑥한 현대의 조직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하던 1992년생 작가 풀림은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 그 당위는 어쩐지 곱씹을수록 거룩하다 .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얇고 길게 하고 싶었어요 , 할머니가 되더라도요 .” 풀림에게 그림은 습관이자 놀이 . 초록이라는 색의 스펙트럼처럼 무수하고 아득한 몰입이자 사는 호흡이다 . 아이들의 발레 교습소를 개조한 풀림의 과거 작업실 . 어느 날 벽면을 메운 거울 안에서 정신없이 붓을 가누며 웃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곤 놀란다 . 스스로도 알 길이 없었다 . 그런 얼굴로 그림을 그리는 줄은. 


    풀림의 그림 속 컬러들은 어떻게 계획되나. 
    "어떤 초록엔 노란빛이 강하고, 어떤 땐 분홍빛이 나기도 해요. 아주 묵직하고 다크한 그린, 밝고 경쾌한 그린 같은 색들은 대부분 제 감정에 기인해요. 작품 속 풍경은 모두 제 기억의 조합이면서 재구성이거든요. 그 장면을 바라봤을 때 제가 했던 생각들, 느꼈던 기분들이 컬러 스킴을 결정해요.”

    작품이 기획되고 탄생하는 과정이라면.
    여느 작가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세스가 아닐까 해요. 그동안 계속해서 사진첩에 모아뒀던 이미지들, 핀터레스트 안에 스크랩 해뒀던 비주얼들을 찬찬히 보면서 큰 주제를 생각해요. 이미지는 매일 매일 쌓여요. 제게 좋아 보이는 것들, 무의식중에 눈에 띈 것들이 습관처럼 저장되어 있어요. 모아둔 시각물들은 꼭 풍경 사진이 아니라 특정 컬러나 패턴일 수도 있죠. 주제를 정하면 누군가는 컴퓨터나 스케치를 통해 사전 작업을 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딱 두 가지를 인쇄해 곁에 붙여요. 컬러나 무드가 드러나는 이미지 하나,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풍경 이미지 하나. 그러고는 밑그림 없이 바로 붓을 들고 착수해요. 성격이 급해요.(웃음) 그렇게 즉흥적으로 나온 결과물들이 대체로 제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안 들면 덮고 새로 그리면 돼요.  

    작업 환경은 어떤가. 
    다른 작가님 세 분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어요. 완전히 트인 공간은 아니고 개인 공간이 느슨하게 구분된 세미 오픈 스페이스에요. 홀로 작업을 하면 아무래도 처지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주변 작가분들을 오가며 마주치고 함께 작업하면 시너지를 내는 경우도 많아요.
     

    작업에 앞서 풀림의 일과, 어떤 의식이나 습관도. 
    매일 평균 여섯시간 이상은 작업에 할애해요. 오전에 세 시간 작업하고 식사하고, 다시 세 시간 그리고. 마음먹고 붙잡으면 세 시간은 정말 금방 가거든요. 저는 그림 그리는 내내 무조건 서서 그려요. 그리고 스마트폰은 작업 반경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죠. 스마트폰을 한번 잡게 되면 짧은 시간이라도 그 안에서 본 것들이 그림 그리기를 이어 나가는 동안 계속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서 몰입을 방해하더라고요. 스마트폰과 잠시 이별하고, 오직 서서 그리는 것.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완성되나. 
    역설적으로 욕심이 극에 달할 때 저는 멈춰요. 자꾸만 뭔가를 더하고 싶고, ‘조금만 더 표현됐으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고, 그래서 끊임없이 여기저기 선을 더하거나 색을 덧입히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 더하려는 마음을 따르고 나면 늘 후회하거든요. 그래서 그때 딱 멈춰요.

    그야말로 풀이 굽이치는 바다. 묘하게 생동하는 패턴이 눈에 선한 그야말로 ‘풀바다 시리즈’는 풀림 작가가 그리는 조금 다른 결의 초록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통상 사람들은 형태와 상황이 상상되는 초록의 풍경 그림을 더 선호하세요. 그런데 이지수 디렉터님은 제 풍경만큼이나 풀바다 시리즈에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놀랐어요. 제가 풀바다 시리즈에 담고 싶었던 개념, 품었던 가치들에 깊이 공감해 주시고, 전시를 통해서 그걸 전달하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죠. 풀바다 시리즈에선 제 손과 상상이 만들어 낸, 자연의 어떤 존재를 연상케 하는 무언가가 엉켜 파도쳐요. 가만히 보면 이 형상은 ‘초록’이라는 시각성으로 통일됐을 뿐, 풀이나 나무, 숲을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아, 이건 숲이네요’, ‘풀밭을 묘사한 거죠?’ 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 인지와 시선이에요.

    풀바다 시리즈의 패턴에서는 다양한 것들이 읽힌다. 
    우리가 사는 자연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自然은 아닐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의 ‘휴식’이나 ‘힐링’이 비롯되는 자연은 본디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 가공해 놓은 자연인 경우가 많아요. 마치 서울숲이나 선유도공원처럼요. 편리하게, 심미적으로 잘 가꿔진 자연을 보며 안정감을 느끼고 위로받는 저와 사람들 사이엔 커다란 공감대가 있다고 느꼈어요. 따지고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이라 느끼는 것. 부자연 안에서도 충분한 ‘자연스러움’을 만끽하는 것. 풀바다 시리즈가 여러 가지 색감으로 바뀌는 등 변주가 이루어진대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이라 느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안팎’이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학부생 때 그렸던, 꽤 시간이 지난 작품이에요. 불규칙한 자연 풍경 안에 단단하고 규칙적인 구조물들이 들어 있는, 그 대조성이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안팎이라는 제목을 짓고 흡족해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초록이 가둔 것이 안이지만 밖인 것도 같고, 초록이 내다보이는 것은 분명 밖이지만 안인 것도 같은, 시선의 이동들.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보며 캔버스 이외의 환경에서도 풀림의 초록이 빛날 거라는 상상을 했다. 
    캔버스 이외의 재료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어요. 아마 올해 말부터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백그라운드 재료, 서브 재료들을 가지고 도전해 볼 계획이에요. 제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부합하는 재료가 뭘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국내의 풍경들이 주로 담겼다. 
    내년쯤에는 한국을 벗어나 이국적인 풍경들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프랑스를 특히 좋아해요. 제 작품 가운데 ‘들쑥날쑥’이라는 대형 작업도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보며 탄생했거든요. 현장에 가서 다시 드로잉도 해보고 컬러도 써보면서 영감을 자극받고 싶어요.



    For Exhibition

    ‘초록’이란 명사에 형용사 변형이 없다는 사실은 내게 늘 충격이자 마음의 짐이었다. 파랑은 ‘파란’, 빨강은 ‘빨간’, 노랑은 ‘노란’, 검정은 ‘검은’, 하양은 ‘하얀’. 그것은 아마 어떤 생명력도 스펙트럼에 끌어안고 보는 초록의 무시무시한 포용력 때문이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인간을 위시한 수많은 생명이 초록에 기대 살기에, 초록으로서 수식의 여지조차 마련해 두지 않은(못한) 걸까. 뭐 그런 생각을 하다 풀림 작가의 초록을 다시 본다. 그가 왜 할머니가 되도록 그림을 그리려 했는지 알 것도 같다. 

    

    JW 아트 갤러리와의 인연은 우연보다 필연에 가까운 느낌이다. 기획자 주체가 작가를 발견하는 일은 연인에 대해 고심하는 것과 비슷한 깊이가 아닐까 한다.  
    이지수 디렉터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그린 작품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셨다는 말씀과 함께, 개인 전시를 제안해 주셨죠. 그동안 작은 전시는 여럿 참여했었는데, 저만의 기획전은 처음이에요. 긴장은 물론이고 설레고, 떨리고, 동시에 욕심도 많이 나요. 

    작품과 작가가 전시의 5할이라면 나머지는 그 모든 순간이 결집하는 공간이라고 믿는 한사람이다. 처음 JW아트 갤러리에 방문했는데 공기가 묘했다. 
    공간이 정말 예뻤어요. 창도 크고 해도 잘 들고, 맑은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죠. 공간과 어우러지는 작업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기획하고 구상하고 있어요. 디렉터님과 대략적인 구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너무 밭은 간격으로 많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보다 품과 여유를 두고 관객들이 넓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방향이 좋겠다고 의견이 수렴됐어요. 

    풀림의 그림에는 ‘도시'와 ‘자연’이라는 두 상반되는 키워드가 있다.  
    도심 속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의 동질감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잘 조성된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기도 하고, 패턴처럼 정렬한 초록의 프리즘을 통해 자연의 인공성을 곱씹기도 했지요. 같은 주제 아래 완전히 다른 작업이 나왔어요. 풍경화의 구상도 좋지만 풀바다 시리즈를 통해서는 추상을 통해 제 생각을 전달해 보고 싶었죠. 
     

    왜 ‘도심 속 자연’인가. 
    이를테면 야생으로 캠핑을 떠났을 때 만나는 자연 앞에서는 도리어 무서운 감정이 앞서기도 해요. 아무런 가공이 되어있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은 인간을 압도하는 만큼 공포가 되기도 하죠. 어쩐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것만 같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고요. 내가 정녕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은 사람들에 의해 잘 다듬어진, 인공의 정원 같은 것들이 아닐까. 이런 내 생각을 작업으로 펼쳐보면 재밌겠다 싶었죠. 

    인간이 조성한 자연도 그 자체로 자연일까. 
    조성된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자연의 충만함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재밌었을 뿐, 이런 자연은 틀렸다거나, 자연은 이래야만 한다는 가치 판단은 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초록은 그 깊이가 사뭇 다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간직한 풀림의 화두라면.  
    지금까지는 맑고 밝은 자연을 그렸거든요. 이번엔 그동안의 행적에 변주를 더하고 싶어 초록의 색감이 가진 넓은 스펙트럼에 집중했어요. 같은 녹색 범주 안에서도 초록이 재현할 수 있는 느낌은 무궁무진하잖아요. 그린을 어떻게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이번엔 짙고 어둑한 녹색으로, 조금 더 차분하고 습도 가득한 자연을 묘사해 보고 싶었어요. 구도 측면에서도, 저의 개인적인 제작 측면에서도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 전시기간: 2023.07.17 – 2023.09.22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1110th Special Exhibition : Lights, All Right미지이기에 닿고 싶은 꿈



    음극과 양극 사이로 진폭을 그리는 전기의 파장. 1초에 60번씩 일어나는 빛의 움직임. 고요하고도 격정적인 방전의 찰나 마다 네온관 너머로 파생하는 잔상. 동공으로 스며들어 아련하게 번지는 네온의 몽환적인 빛. 진공을 유영하는 색채를 발산하는 네온은 도상필 작가에게 한 편의 작은 우주와도 같다.


    Editor Yoon, Hye Kyung

    Director ANOUK




    As an Artist

    네온 장인, 네온을 중심축으로 진화하는 작가, 여러 매체를 배우는 학생. 끊임없이 확장하는 그의 작업은 밀도를 높여 나간다. 생명력 넘치는 시도로 희망이라는 불멸의 주제를 새롭게 이야기한다.  


    작가님이 사랑하거나 간직하고픈 네온 특유의 심상이 있을 것 같아요.
    LED가 보급되면서 네온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LED의 블루라이트 파장은 인위적이라서 금세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지요. 반면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네온 빛의 파장은 편안한 무드를 연출해요.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듯한 감성적인 네온 특유의 빛은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매력으로 가득하지요. 일상에서 기능하는 네온 아트 작품으로 조명등 연작을 제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안겨주니까요.

    저는 네온 조명등을 침대 곁에 두거나 작업할 때 켜 두는데요. 우울감을 없애주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네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트레이시 에민은 어린 시절 아픈 상처를 네온의 방전빛을 통해 치유 받는다고도 말했대요.

    지금도 상업적 네온을 제작·설치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36년간 꾸준히 네온을 업으로 삼을 만큼 강렬한 계기가 있었나요?
    1987년 23세의 나이로 네온업계에 입문했어요. 직원 생활을 하다가 1989년 창업했지만 곧바로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국내에서 네온 소등 조치를 하는 바람에 한참을 방황했지요. 일본으로 무역업을 하던 지인의 제안으로 1년간 일본 동경의 한 네온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1990년 당시 일본의 네온 업계는 시장 규모도 크고 자재나 장비들도 좋았거든요. 일본 생활 3개월 차에 코리야마에서 열린 네온 아트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네온 아트를 처음 접했지요. 그때의 충격과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 접했던 플라즈마 방전 기술로 제작한 네온 아트는 아직도 저에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답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텍사스에 있는 필척 유리학교에서 플라즈마 방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요.

    도심 거리 속 네온, 전시회 속 네온, 현실과 이상과도 같은 이 두 간극 사이에서 작가님이 균형을 잡는 비결과 동력은 무엇인가요? 그 너머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도심의 네온이나 전시장의 네온이나 제게는 생활이었던 점은 같아요. 시기적으로 지향점이 달랐다고 할 수 있네요. 상업적 활동을 하면서도 항상 표현이나 기법의 부족함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요. 앞서 이야기했던 일본 코리야마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접한 플라즈마 네온의 빛과 색 그리고 형상을 잊지 않고 있어요. 덕분에 네온의 예술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유리, 도예, 금속과 같은 다른 매체 분야들을 공부하고,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늘 순수미술을 지향했어요. 행복한 창작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요.

    장인 정신과 작가 정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같은 발견과 경험을 거쳐 어떤 길을 찾았나요?
    둘 다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같지만, 장인은 자기 분야에 투철한 사명감으로 궁극의 기술을 익혀서 발휘하는 것이고, 작가는 자기의 길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아직 길을 찾아 가는 과정에 있지요. 특히 라이트아트에 관심이 많아요. 저의 기질과 전문성과 개념과 여러 매체를 활용한 창작은 독창성과 조형성과 시대성을 어느 정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해외에서 라이트 아트를 선보였던 작가들의 표현 양식이 주로 평면에 기초한 상업적 기법에 머물러 있더라고요. 이러한 기존의 문법에서 탈피해 입체적이고 조형성을 갖춘 네온 아트를 추구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언제까지나 네온은 저의 대표적인 매체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전문성이 있으니까요. LED가 보급화될수록 네온이라는 매체가 거리에서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어요. 다음 세기에는 사라질지도 모를 네온의 시대를 저만큼은 지켜나가고 싶어요. 상업 네온을 작업할 때에도 네온관 제작에 쓰이는 진공 장비를 4세대까지 개발했고 최고급 자재를 쓰면서 항상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간의 상업 네온을 제작한 경험이 창작을 할 때 어떤 질료로 작용하나요?
    상업적 작업은 운동선수들이 자기의 기량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저는 네온의 빛과 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성으로 유리를 손꼽는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거리의 네온관도 유리로 만든답니다. 버너 앞에서 유리를 녹이며 작업할 때 아이디어가 가장 잘 떠오르더라고요. 유리를 녹이는 감이 있어요. 술을 마신 후나, 기분이 나쁠 때나,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감이 떨어져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풀리고 힘이 딸리는 것과 같아요. 사실 상업이든 순수미술이든지 간에 유리 작업은 늘 긴장의 연속이에요. 항상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작업을 할 때가 뇌가 가장 활성화되면서 아이디어가 샘솟고 창작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해요. 

    여러 매체를 공부하면서 대학원에서 유리와 도예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앞서 대학에서는 주얼리 공예를 전공했지요?
    주얼리 공예를 배우면서 한 작품 당 스케치를 백 장 정도는 했었거든요. 톱질, 줄질, 은땜 같이 정밀한 기법을 수련했고요. 어떤 사물을 단순화하거나 형상화하는 훈련이었어요. 작품에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하는 기본기를 다진 거지요. 




    About Work

    액체로 용해한 유리를 파이프를 이용해 불면서 여러 형태로 만드는 블로잉 기법은 유리 작업의 꽃이라고 불린다. 블로잉 작업실을 가지는 게 꿈이라는 도상필 작가는 오늘도 네온빛을 투영하는 유리를 다루며 영감을 얻는다. 고진공 상태에 초고순도 가스를 주입하고 전기를 흐르게 해 빛을 발하는 유리 네온관은 그에게 순도 100%의 희망이자 우주와도 같다.  


    《LIGHTS ALL RIGHT》라는 전시명을 2018년 대림창고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이후 2022년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유리도예과 졸업 작품 전시회와 이번에 지웅아트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에서도 같은 전시명을 내걸고 있는데요. 수년간 작가님의 작품관을 표상한 LIGHTS ALL RIGHT라는 주제는 어떻게 착안하게 되었나요? 
    이지수 디렉터님이 지어준 ‘LIGHT’S ALL RIGHT‘라는 주제로 대림창고 갤러리 전시를 열면서 본격적인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어요. 당시 대림창고 갤러리에서 이 디렉터님이 '빛'을 다루는 전시를 기획했는데 네온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작가를 찾다가 저를 발견했대요. 네온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알릴만한 기회를 갈망했지만 먼 이야기인 것만 같아 막막했었는데 그 연락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나름 방법을 찾고 찾다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미술사학 등을 배우고 있었거든요. 대구 빌리웍스 아트 앤 스튜디오에서 연 《WISH》전도 이지수 디렉터님이 기획했는데 이 전시의 주제명도 함께 지어주었지요. 유리 같은 다양한 매체를 보다 심도 있게 다루려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대학원에서 만든 첫 작품에 붙인 <하울링>이란 이름도 이지수 디렉터님이 제안해 주었고요. 저에 관해 “마음으로 낳은 작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준 정말이지 감사한 인연이지요.

    이번에 지웅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도 이지수 디렉터님이 기획했다고 들었어요. 이렇듯 각별한 인연으로 시작된 ‘LIGHT’S ALL RIGHT‘라는 주제로 수년간 작가님의 작품관을 표상해왔는데요. 이 주제에 관해 어떤 철학이 생겼나요?
    저는 ’LIGHT’S ALL RIGHT‘라는 주제를 “네온(빛) 즉 LIGHT는 언제나 옳다”라는 의미로 생각해요. 네온은 화려하면서도 우울한 특성과 무드를 지녔어요. 퇴폐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으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도 소환되지요. 오늘도 거리에서 보이지만 다음 세기에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지금의 매체이자 낡은 매체로 인식되고 있고요. 네온을 생업과 작업으로 지속하면서 이러한 빛과 그림자 같은 양가적인 네온의 측면들을 경험했거든요. 네온의 화려한 이면엔 이런 생존권에 대한 불안이 늘 드리워져 있었지요. 제가 지금까지 직업으로 네온을 제작하는 긴 시간이 3년 흥하면, 5년 쇠하고, 4년 흥하면 다시 5년 망하는 ‘흥망성쇠’의 반복이었어요. 오일 쇼크, IMF 같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바뀌는 에너지 정책에 옥외광고 법규는 밀접한 영향을 받아요. 상업 네온 작업자로서 순수 미술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비주류를 대하는 주류의 부정적인 편견도 수없이 겪었고요. 이런 시련과 고난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희망이자 동력이 저에게는 네온이었어요. 한 마디로 “나는 네온으로 살았고, 네온은 나를 살렸다”는 경험에서 ‘LIGHT’S ALL RIGHT‘라는 주제를 발화한 것이지요.  

    이런 네온의 양가적인 의미와 매력은 모순적인 삶과 세상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살면서 부조리가 일으키는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해요. 저에게는 삶이 미생이듯 네온도 미완성이었어요. 예술로서의 네온을 작업하려고 여러 매체의 기법을 배우고 시도하고 실천했지요. 네온으로 진화하면서 예술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타자에게 유익을 주고 현실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는 등의 창조적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타의가 아닌 자발적 의지로 작업하고,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을 주고, 독창성과 보편성을 인정받는 걸 행복한 예술가로서의 이상향으로 여겨요.
     

    그렇다면 네온은 작가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상향인건가요? 
    ‘최광진 미학방송’이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틀어두고 들으면서 일하는데요. 미학 지식을 알려주는 이 콘텐츠를 3년 넘게 구독하면서 이 분의 책도 탐독했지요. 그 중 니체와 들뢰즈의 철학에서 저의 예술관과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니체는 예술가를 디오니소스적인 인간이라고 말했어요. 포도처럼 짓이겨지고 발효되어야 포도주가 되듯 위기, 혼란, 두려움을 해결하고 부활하면서 디오니소스적인 인간 즉 이상적 인간성을 지닌 초인(위버멘시)이 될 수 있다고 했지요. 니체에 따르면 예술은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신명과도 같고, 예술적 욕망은 인간의 존재 이유인 거예요. 니체뿐만 아니라 들뢰즈의 예술론 또한 저의 기질이나 성격과 결이 같아요. 상업 네온에서 순수미술로서의 네온으로 지평(외연)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저의 태도. 그리고 들뢰즈의 “유목적 탈 영토화”에 관한 예술론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감각을 열어 타자와 하나 되는 게 존재의 지평을 넓혀 탈영토화 하는 길이며, 예술적 존재 방식이고 예술의 존재이유이다.”라고 정의했지요.

    "여러 매체를 공부해서 다양한 표현으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 예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비단 네온의 상업적·표현적 한계를 극복하는 외연 확장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네온 인생에도 적용되는 개념 같은데요? 
    네온을 광원으로 활용해 빛의 반사, 굴절, 투과 같은 유리의 물성을 융합한 조명등, 여러 매체를 접목한 표현과 기법으로 순수미술로 나아가는 네온 라이트 아트. 이 두 가지 축을 해결 방안으로 연구하며 작업한 작품을 이번 《LIGHT’S ALL RIGHT》전에서 선보여요. 삶의 문제와 고난 극복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소망에 대한 ’염원‘을 빛으로 형상화한 《WISH》전(2019. 12, 대구 빌리웍스 아트 앤 스튜디오)의 연장선상을 그리고 있지요. 저의 정신적 중심의 매개체인 비천상(飛天像)에서 영감을 얻어 《WISH》라는 전시명을 지었는데요. 에밀레 종에 새겨진 비천상으로 네온 양식으로 발화한 저의 ‘염원’을 표현했어요. 에밀레 종 전설 속에서 갓난아기를 시주했던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향한 열정은 이번 전시에도 이어지고 있지요. 어머니의 실천적 희생과 사랑을 기린 <모정, 그리고 사리리 663>와 헤파이스토스의 장인 정신을 나타낸 <부활> 두 작품에서요. 네온의 전성기가 기적처럼 돌아오길 바랬던 저 또는 누군가가 희망하는 ‘염원’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창작이란 원동력을 생성해 나가면서 저의 상실감이나 절망감을 극복했고 그 자리를 희망으로 채운 거지요.

    어머니의 인생을 형상화한 매화, 노스탤지어가 깃든 고향 산골의 사계, 살피며 지켜야 할 독도를 작품 <선규화>, <사라리 663>, <절대주의, 방심금물>로 나타냈어요. 사적인 유년의 감성에서부터 사회적 현상까지 자연에 투영하는 주제가 다채로워요. 
    자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려고 노력해요. 자전거로 다닌 거리가 30만km가 넘어요, 일요일 마다 아내와 MTB(산악 지형용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요. MTB를 타면서 늘 산을 오르지요. 그 정상에서 보는 산의 조형미에서 작품을 착안했던 것들을 대학원에서 유리를 전공하면서 구체화했어요. 저는 경북의 오지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개구쟁이 친구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 신나게 뛰놀았지요. 산과 강과 들을 접하고 있어서 수영하고, 고기 잡고, 뒹굴며, 땡볕에 잠자리, 매미, 메뚜기 잡으러 뭉쳐 다녔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 전까지 부모님을 도와 2년을 농사도 지었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객지로 나가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와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작업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자연은 나를 키워준 엄마의 품처럼 늘 친근한 존재이지요. 향후 산 시리즈로 유리 평면과 입체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네온, 유리, 돌을 이용한 입체적·부조적 조각, 유리에 부조 기법을 적용한 회화, 유리 색면 추상 등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앞서 이야기한 ‘네온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타 매체와의 융합을 통한 조명등 작품, 순수미술 작품을 구상해 선보이는데요. 상업적 네온을 제작하며 느꼈던 현실적 한계는 무엇이었나요? 
    네온의 현실적 한계는 상업적인 매체로만 인식된 점과 시대의 흐름에 의해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네온의 고유한 목적을 확장하려고 해요. 그 확장의 방향이 순수미술과 조명등이고요. 네온의 단점으로는 깨지는 것과, 아무나 제작할 수 없다는 점, 네온을 켜기 위한 소재들이 발전되지 못했다는 점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네온의 제일 큰 장점은 방금 말했지만 ‘빛이 지닌 감성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라이트아트의 범주에서 네온을 매체로 개념 작업을 펼쳐온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기존 상업 네온 기법의 평면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발견했다고 들었어요. 이를 통해 어떤 개념을 도출해서 네온관을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표현양식으로 발전시켰나요?  
    그분들은 자신의 개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매체가 네온이라고 선택했어요. 다시 말해 개념에 중점을 두었기에 네온 양식의 기존 틀 안에서 그들의 표현을 한 거예요. 개념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대가들의 양식이라면 저는 네온 전문가로서 쌓아온 기술력으로 표현 양식을 고민한 것이지요. 기존 작가들이 적용했던 네온의 표현 양식은 상업적 네온사인의 양식과 동일했어요. 다시 말해 작품에 쓰인 네온관들이 기존의 관(튜브) 형태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네온관을 의도의 형태가 드러나도록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양식을 창작하고 싶었어요. 그 지점에서부터 저의 작품 <피어나리>와 <선규화>의 입체적인 조형 언어가 출발했지요.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되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들이 있나요?  
    댄 플라빈, 올라퍼 엘리아슨, 제임스 터럴, 트레이시 에민, 브루스 나우만, 이반 나바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살펴보았어요. 국내 작가로는 라이트와 키네틱을 동시에 구현하는 최우람 작가를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특히 요셉 보이스의 예술관에 공감해요. 인간에 대한 애정,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시대정신이 정말 좋아요.



    For Exhibition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님은 네온을 중심으로 유리 회화, 키네틱 아트, 레디메이드, 조소, 설치 등 여러 매체와 융합한 라이트 아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WISH》전에서 영상과 네온, LED를 활용해서 설치 작품을 했고, 관객이 동참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도 시도해 봤지요. 이런 설치 작업들을 다원주의적 개념 설치라고 칭하는데요. 유리와 도예를 전공하면서 매체가 추가되었어요. 현대미술에서 이렇게 여러 매체를 시도하는 건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저 역시도 그런 시대상에 발맞춰 발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여정을 이번 《LIGHT’S ALL RIGHT》전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요.  

    네온뿐만 아니라 유리, 흙(도예), 금속, 레진, LED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물성의 다양성은 작가님의 세계관, 예술관과 어떻게 맞닿아 있나요? 
    상업적으로 여러 경험을 통해서 접하고 알게 된 매체들도 있고, 전공을 통해서 익힌 매체도 있지요. 아는 범위의 매체는 표현의 아이디어에 따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최선이라는 판단이 서면 선택해서 사용합니다. 예술관, 세계관 보다는 옥외광고 현장 경험을 통해 터득하거나 축적한 것들이 즉흥적으로 발현되는 게 아닐까요? 유리나 금속 같은 경우에는 상업 네온을 제작하면서도 만져야 하는 재료들이었거든요. 키네틱 아트도 그런 측면에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마다 빛, 색, 물성, 텍스처, 조형, 설치 등 특유의 미감을 나타내는 특유의 요소와 기법이 있는데요.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통해 개성을 투영했나요?  
    작품에 따라서 빛이나 색, 텍스처나 조형에 역점을 두지만, 조명은 형태와 색감에 중점을 두고, 조형물은 소박과 숭고미를 의식합니다. 유리 회화를 만들 때는 가마 속에서의 우연히 얻어지는 순간의 텍스처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유리를 동일한 조건에 녹여서 식혀서 굳히더라도 미묘하게 다른 결과를 얻게 되거든요. 이런 불확실성이 오히려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유리는 네온을 가장 탁월하게 표현해주는 물성이에요. 빛을 투과하고 굴절하고 반사하니까요. 거기서 비롯되는 오묘하고도 온화한 미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박한 빛이 있지요. 나무, 돌, 흙도 즐겨 써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나 봐요.  
     

    산업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미술가, 건축가, 조각가의 오리지널 디자인 조명이 예술적인 오브제로 인식되고 있어요. 이러한 세계적인 철학과 가치가 일상에서 기능하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거겠지요? 작가님도 일상에서 기능하는 네온 작품으로 조명등을 《LIGHT’S ALL RIGHT》전에서 선보이고 있지요? 
    순수미술과 기능하는 미술을 모두 구현하는 투 트랙 작가가 되고 싶어요. 유익을 비추고 싶은 거지요. 네온 광원을 심미적이고 독창적으로 활용한 조명등을 추구해요. 대학원에서 유리를 전공하면서 유리와 네온을 활용한 조명등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퓨징, 텍퓨징, 슬럼핑 같은 여러 유리 기법을 직접 손으로 구현해서 만드는 거니까 세상 단 한 개뿐인 조명등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기능이나 미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LED 조명도 쓰고 있어요. 

    ‘기술와 예술’, ‘물질적 측면’과 ‘관념성의 비물질적 측면’ 사이에서 선택한 지점이 있나요? 
    관념과 물질은 뗄 수 없는 양면성을 지어요.. 그래서 그 둘의 조화가 중요하고 관념이 구체적으로 물질화 된 것이 작품이지요. 어느 쪽을 강조할 것인가는 작가의 몫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어떤 측면을 강조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 같아요. 결국 저의 선택은 관람객들이 네온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발현되니까요. 

    지웅아트갤러리에서 여는 첫 전시를 개최하는 소감과 바람은? 
    이지수 디렉터님과의 소중한 인연이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졌어요. 저의 작품세계를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응원하는 정말이지 고마운 기획자와 함께하는 만큼 지웅아트갤러리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까지의 길은 지금의 출발을 위한 여러 장애물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문득 오딧세우스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트로이 전쟁으로 10년, 이후 귀향길에서도 1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그가 아내에게 능청맞게도 이렇게 말했다지요. “여보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다오.” 






    ■ 전시기간: 2023.06.19 – 2023.07.27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108th Special Exhibition : Very Berry Winter상큼하게 행복한 겨울 이야기



    2022년의 3/4이 훌쩍 흘렀다. 코로나로 인한 소통의 마비와 경제적인 타격으로 말미암아 지난 3년간 우리는 각자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괴로움과 외로움. 지혜롭게 이겨낸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모두가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여전히 절망과 슬픔 속에서 잠식돼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인정이자 삶의 방식이다.


    Editor Alex Oh

    Director ANOUK




    As an Artist

    거의 매일 쉼없이 작업실에 나와 네 시간 이상 그림을 그리는 조명희 작가. 예순을 훨씬 넘긴 나임에도 체력이 왠만한 중년 작가 못지 않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운동.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동네의 헬스장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조명희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색의 깊이’에 중점을 둔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색은 곧 그 주체’라는 말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네, 색은 화가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색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아요. 장미를 그리는 것 보다 장미 안에 있는 깊은 색들을 꺼내서 장미 본연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요. 그래서 색을 만드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섞고 실험하고 관찰하죠. 하지만 또 색이 전부는 아니어서 특이한 전개와 마무리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그림 이외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꾸미는 일을 좋아해서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는 파티플래너가 되고 싶었어요. 마음껏 테마에 맞는 색과 꽃, 소품을 이용해서 파티 분위기를 만들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이외, 작업실에 와인과 꽃, 멋진 음악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작가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아주 세말하고 정교한 작업을 합니다. 생각이나 고민이 필요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사물을 따라 그리면 되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어느 정도 잡히는 것 같아요.

    화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려주세요.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건 ‘가족’입니다. 그림이 가족 보다 우선순위에 있진 않아요. 그러나 화가로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내 자신’입니다. 제 인생이 나름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물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제가 원하는 혹은 인정할 수 있는 작품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나의 모든 것을 다 꺼내고 정성을 바친 그림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스스로를 자극하시나요?
    창작의 고통은 작가라면 다 갖고 있지요.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면서 얻을 수 있지만 저는 패션 잡지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솔직히 패션 디자이너의 창의력은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닐까요? 어떻게 그런 패턴과 색을 사용할 수 있는지 보는 내내 감탄합니다. 옷들의 화려한 색감은 물론 똑 같은 색인데도 색이 달라 보일 때도 있어요. 

    앞으로 작가로서의 희망하거나 기대하는 것이나 이루고자 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가로서 창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을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겠죠. 제가 말하는 ‘가치’는 보는 이가 감동을 느끼는 지입니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작가는 세상에 없어요. 그러나, 저의 만족이나 즐거움 보다는 관람객이 그림을 통화 순화되는 마음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About Work

    작품의 내면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들을 비롯해 화려한 색들로 이뤄진 꽃의 심연으로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색의 깊이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색은 작품의 주체라고 이야기하는 조명희 작가. 


    작가님의 작품은 직관적이면서도 추상화에 가깝습니다. 작가님의 화풍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는 흥이 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어느 순간 타오른 풍부한 감성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주의’ 라고 할까요? 반(半) 추상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자세히 보면 누구나 알아보지만 멀리서 보면 이 그림이 무엇인지 헷갈릴 지도 몰라요. 

    작가님의 꽃 그림들이 참 예쁩니다. 꽃을 특별히 좋아하시나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게 꽃, 아니겠어요? 아름다움에 빠지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니까요. 저 역시 꽃을 좋아한답니다. 화가로서 보자면 아름다운 꽃이 가진 색의 느낌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어요.

    요즘, 어떤 테마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추상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싶어서 얼마 전부터는 다양하게 그리는 중입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처럼 색면의 추상화도 좋아하고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처럼 선으로 표현되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선택하 소재는 ‘문(門)’인데요. 문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진 추상화를 그리고 있어요. 그 문은 행복과 슬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의미합니다. 객관적인 눈으로 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랄까요?



    For Exhibition

    이번 전시의 제목은 <Very Berry Winter>. 색을 사랑하고 색을 통해 슬픔과 기쁨,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조명희 작가의 ‘아름다운 오너먼트’ 같은 작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녀와 나눈 진솔한 이야기들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가 지웅갤러리에서의 첫 전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지웅과 참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서 열리는 첫 전시가 굉장히 기대돼요. 한 해를 보내기 전에 이런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님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대라고 할 것은 없고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무수히 그린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거든요. 작가로서, 그저 겸허히 반성하고 더 도약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입니다. 

    관람객이 작가님의 그림을 보았을 때 어떤 점에 더 집중하고 봐주면 좋을까요? 
    색이죠. 그리고 선들. 정말 색이 아름답다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관람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림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채로 지내고 있어요. 오직 그림만이 제 인생의 대부분을 메워주고 있지요. 이토록 사랑하는 그림들을 오래도록 그려오고 그렇게 작업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런 저의 마음이 관람객들에게 닿았으면 하고 2023년 새해에는 행복하고 건강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 전시기간: 2022.12.16 – 2023.02.28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97th Special Exhibition : 화양연화(花樣年華)The most beautiful days in your life



    2022년의 3/4이 훌쩍 흘렀다. 코로나로 인한 소통의 마비와 경제적인 타격으로 말미암아 지난 3년간 우리는 각자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괴로움과 외로움. 지혜롭게 이겨낸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모두가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여전히 절망과 슬픔 속에서 잠식돼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인정이자 삶의 방식이다.


    Editor Alex Oh

    Director ANOUK




    As an Artist

    조민영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쩌면 <프랑스 백반>의 사장님으로 더 잘 알려졌을 지도 모르겠다. 얼핏 그림 그리는 화가에게 붓 대신 칼을 드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요리를 통해 화가로서의 열정과 꿈이 더욱 간절해졌다면 그것은 분명 시너지일 것이다.  


    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나요?
    저희 아버지도 화가였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가 캔버스에 붓을 문질러보면 그 거친 소리가 묘하게 좋았어요. 아버지도 홍대 서양화과를 나왔는데, 사람들이 부녀 모두 홍대 미대 출신이란 점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셨죠. 지금 아버지는 30년째 투병 중이랍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오른쪽을 못 쓰게 되었는데도 왼손으로 어렵게 작업을 하고 계셔요. 눈도 어두워서 작업이라고 하기 보다 그냥 당신이 놓기 싫은 그림에 대한 미련을 푸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 스며든 것 같습니다. 

    유학을 프랑스로 떠난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은 학비 부담이 없다는 거였어요. 독일과 프랑스를 마음에 두고 있을 즈음 독일에서 한국 유학생이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죠. 마침 프랑스에 친구들이 좀 있어서 더 친숙했던 것 같아요. 또,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화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과 교류에 대한 환상도 컸답니다. 사실, 작업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도 똑같이 중요하잖아요. 당시 프랑스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작업방식이나 삶의 모습들을 보고 프랑스를 선망하게 되었죠.

    유기견은 한국에 온 이후에 그리신 걸로 아는데요. 유기견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지 알려주세요.
    아는 동생을 따라 유기견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 일이 계기가 되었지요. 당시 큰 아픔을 겪은 뒤라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던 시점이었는데, 버려진 유기견들의 슬픔이 오롯이 저에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만해도 작업을 재개하기 전이었고 몸도 너무 힘들었지만 유기견을 그리는 것만이 화가로서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그렇게 작업 아닌 참여 형식으로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로서 작가님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제가 그리 열정적인 작가는 아닌데요, 사실 작업보다 ‘작업하는 제 자신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사하게 여깁니다. 내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 능력치가 나의 의지를 표현해주어서 감사해요. 살아가며 고마운 여러가지 중에 제가 화가라는 것에 대해, 그 운명에 대해, 그 시작이 되어준 나의 아버지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대단히 엄청난 화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화가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림에 대한 작가님의 열정과 모험, 도전, 미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작업이 제 삶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어요. 생활하려면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가게를 중심으로 한 쪽에 작업 공간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나마 이런 현실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가게 수입으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식당 운영을 100% 예약제로 하다 보니 예약이 없는 날에는 그림을 그렸어요. 늘 작업 시간이 부족했고 그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제 건강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네요. 작가로서 갖고 싶은 모험, 도전, 계획 같은 것들은 지금으로선 너무 추상적이거든요. 제 자신과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한다, 계속 그리겠다는 것입니다. 




    About Work

    조민영 작가의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색감에, 그 표정에, 그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눈부신 파스텔 톤은 생명체에 묘한 신비로움을 선사하고 여백과 섬세한 선들은 피사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만 같다.


    작가님의 작업스타일을 알려주세요.
    저는 아주 게으른 작가예요. 열심히 그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열심히 생각해요. 그런 다음에는 몰아서 몇 점을 한번에 그려냅니다. 이렇다 보니 틈새 시간에 야금야금 작업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어요. 결국, 그리는 시간보다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고 제 자신과 항상 타협한답니다. 

    작가님은 그리는 대상(유기견, 사람)을 어떻게 찾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이 만났던 사람 혹은 강아지들인가요? 
    제 그림의 대상은 늘 ‘누군가’입니다. 만나지 못한 모델이 더 많아요. 어떤 사진을 보고 모티브를 찾아 제 나름의 그림 속에 ‘끼워 넣기’ 식으로 작업해요.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색들이 굉장히 예뻐요. 피사체의 표정이나 감정의 디테일도 너무나 섬세합니다. 전반적으로 작가님 그림에 드러나는 색상은 파스텔처럼 유하고 연한 감성이 느껴지면서 선명하지는 않는데요. 그런 색이 사람이나 동물의 표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결정하고 고민해서 그리지는 않습니다. 성격 상 모든 면에서 계획적이질 못해서요. 충동적인 면이 더 강하죠. 그렇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연히 대상이나 색상을 고릅니다. 그건 결정하는 순간의 감정일 뿐이고 그 바탕에는 인간, 생명에 대한 어떤 존엄성이 깔려 있어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인가요?
    ‘메시지’가 아닐까요? 제가 그림으로 전달하려는 언어가 곧 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For Exhibition

    그룹전을 포함해 개인전을 거의 열지 않는 조민영 작가는 지웅아트갤러리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된다. 스스로 게으른 작가라 말하는 그녀의 소신은 ‘걸고 싶은 그림이 있을 때’ 전시를 하는 것. 인물화에 대한 애정이 높아진 요즘, 조민영 작가의 최신작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될 작품은 어떤 것들일까요? 
    요즘에는 동물 그림을 많이 그리지 않아서 아마도 인물화 위주가 될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완성한 분홍색이 잔뜩 들어간 인물시리즈 얘기를 하자면,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색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큰지 새삼 놀란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막연하게 분홍이라 하면 밝고 환하고 기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슬픔을 분홍으로 표현하고 나니 제 자신도 놀랐거든요. 평소 잘 안 쓰는 색이기도 했지만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의외의 조합이었죠. 

    어떤 기준으로 인물화를 선택했을까요? 
    선택의 기준은 딱히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노인을 많이 그렸고, 외국인도 그렸고, 밝은 색을 많이 넣었어요. 노인을 그린 이유는 삶이라는 것에 대한 회한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인생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은 허망함을 드러내고 싶었죠. 그런데, 분홍을 잔뜩 넣었고 의외로 잘 어울려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웅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첫번째 전시입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지웅에서의 첫 전시라는 점이 감개무량한 한편 준비가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웅은 작가에 대한 배려가 유난히 많은 곳이죠.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는 말에 감사했어요. 덕분에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한 듯해요. 마음먹은 만큼 인물화를 많이 그리지는 못했지만 1년 넘게 그리다 보니 이제야 조금씩 내가 뭘 그리고 싶어했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다음 전시는 언제 또 할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더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려고 합니다. 
     





    ■ 전시기간: 2022.10.12 – 12.16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8PERS Pop-up #02Call Me By Your Name
    타투 아티스트의 드로잉, 여름을 담다


    스튜디오퍼스(@studio.pers)의 두번째 팝업 이벤트가 시작된다. 《Call Me by Your Name》이란 타이틀로 약 두 달간 지웅아트갤러리 2층에서 열릴 예정. 이번 팝업 전시는 2021년 공그림 타투 아티스트의 드로잉 전(展)과 동일한 제목으로, 기존 전시에서 보여준 감성의 결(vibe)과 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름의 정점을 달리는 7월. 장마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에 돌입했다. 갤러리의 하루는 매우 드라마틱하지도 그렇다고 고요하지도 않지만,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음료, 이국적 패턴이 그려진 셔츠와 밀짚 모자 등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퍼스는 상큼한 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두번째 팝업을 기획했다. 

     

     


    일상의 숨표와 느낌표가 될 시간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어딘가로 떠나는 이동만이 여행이나 휴가는 아닐 것이다. 반복된 일상을 바꾸는 것도, 내 마음의 경계선이 분리되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작은 일탈이기 때문이다. 

    공그림 타투 아티스트의 드로잉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스튜디오퍼스 팀은 이번 팝업을 통해 기존에 선보였던 웨어러블 아이템을 비롯해 조밀한 아이템들을 선보인다. 따뜻한 감성을 지닌 유채 아크릴, 행복하게 만드는 소재로부터 찾아낸 소소하고 귀여운 이미지,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느낀 여유와 생동감 넘치는 색감 등, 이 모든 디테일을 이용해 팝업 전시를 마련했다. 

    바로셀로나 여행: 공그림 작가의 드로잉


    바로셀로나 여행: 공그림 작가의 사진

    독특한 패턴이 들어간 패브릭부터 일상을 좀 더 파고들어가 스티커팩, 노트, 그립톡, 에코백이 추가된다. 한여름 밤의 꿈이 무색하지 않은 7월부터 감성충만해질 9월까지 열리는 이번 팝업 이벤트는 이런저런 이유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이들의 정서적 휴가 이외에도, 내가 찾고 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던져줄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짧은 휴식과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도 《Call Me by Your Name》 팝업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방문하길 바란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아름다운 아트북과 포스터, 각종 아트 상품 플랫폼인 스튜디오퍼스(https://studiopers.com)는 온라인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판매되는 모든 물건에 대한 상세한 제품 설명은 퍼스만의 큰 장점. 다른 사이트에서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 싶은 정보와 궁금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 매우 유용하면서도 다른 온라인몰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법. 실제로 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동일하다. 이에, 이번 팝업 이벤트는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던 이들을 위한 절호의 기회.

    갤러리 전시처럼 오브제들을 펼쳐 놓았다. 공간에 맞는 레이아웃과 동선으로 유연하게 관람하도록 만들었다. 화면에서 봤던 제품을 보고 만질 수 있어 반가웠다는 반응들이 대부분. 스튜디오퍼스 팀은 인스타그램을 통한 이벤트를 실시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계획 중이다.




    ■ 전시기간: July. 25~Sep.18. 2022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SUN)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관람방법: 네이버예약 (https://bit.ly/3RK0B8b) or 갤러리 문의






    7PERS Pop-up #01Studio Pers: On the 2nd floor
    예술과 생활 사이, 그 어디쯤


    지웅아트갤러리가 운영하는 아트온라인숍 스튜디오퍼스(@studio.pers)의 첫번째 팝업 이벤트 《Studio pers: On the 2nd floor》. 2022년 2월, 찬바람이 두꺼운 옷깃을 여미게 한 쌀쌀한 겨울이었지만 갤러리 2층에서 열린 팝업의 열기는 훈훈하였다.



    5층 규모의 지웅아트갤러리는 차들과 사람들로 분주한 청담동 메인 골목에서 살짝 빗겨져 있다. 유명 이탤리언 레스토랑 바로 옆건물임에도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갤러리임을 드러내는 간판 하나 없이 커다란 전시 포스터만 덩그러니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갤러리임을 알아차리고 들어가기만 하면 여느 갤러리와 다른 바이브가 뿜어져 나온다.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은 마치, 쇼케이스처럼 진열돼 있다. 멋진 포스터, 말끔히 정리된 아트굿즈 퍼레이드, 녹색의 식물들이 주는 싱싱함, 그리고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까지, 작지만 꽉 채워진 밝은 에너지가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5개의 브랜드, 5개의 행복

    이번 팝업에는 스튜디오퍼스의 프렌즈라 할 수 있는 브랜드들이 모두 모였다. 모니카팜(monicagarm), 고기리농장(gogiri_nongjang), 1984북스(1984 books), 몽로더(MON L’ODEUR), 트랙26(TRACK 26)의 아이템들이 한자리에 선보인 것.

    몽로더의 캔들


    고기리 농장의 플랜트

    무엇보다, 전시된 제품들은 퍼스의 큐레이터가 특별히 선정한 컬렉션의 개념을 띄는데, 고기리농장이 직접 설치한 플랜트의 경우 독립적인 식물전시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연주의와 친환경을 표방하는 모니카팜은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 소품과 의류들을 판매했으며 트랙26은 고급스러운 일본과 유럽의 빈티지 잔, 플레이트, 화병, 글래스 오브제들을 디스플레했다. 은은한 허브향이 인상적이었던 몽로더의 캔들은 선물용으로 제격이었고,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면 1984북스의 책들로 만족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5개 브랜드의 물건들을 하나씩 구매하여 집안에 들여놓았다면 5가지의 행복이 채워진 순간이지 않았을까? 포근하고 따뜻한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를 완성했으리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아름다운 아트북과 포스터, 각종 아트 상품 플랫폼인 스튜디오퍼스(https://studiopers.com)는 온라인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판매되는 모든 물건에 대한 상세한 제품 설명은 퍼스만의 큰 장점. 다른 사이트에서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 싶은 정보와 궁금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 매우 유용하면서도 다른 온라인몰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법. 실제로 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동일하다. 이에, 이번 팝업 이벤트는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던 이들을 위한 절호의 기회.

    갤러리 전시처럼 오브제들을 펼쳐 놓았다. 공간에 맞는 레이아웃과 동선으로 유연하게 관람하도록 만들었다. 화면에서 봤던 제품을 보고 만질 수 있어 반가웠다는 반응들이 대부분. 스튜디오퍼스 팀은 인스타그램을 통한 이벤트를 실시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계획 중이다.




    ■ 전시기간: Jan~Mar 2022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SUN)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관람방법: 네이버예약






    66th Special Exhibition : 비결정론적인 비주기의 흐름혼돈의 에피소드: 치유와 회복으로 승화된 자

    지웅파인아트갤러리의 여섯 번째 전시는 설치예술가이자 조각가, 도예가와 같은 다양하고 입체적 미술을 선보이고 있는 신예진 작가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각인된 자연적 개체들을 작가적 해석을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전시는 <비결정론적인 비주기의 흐름>이라는 타이틀로 명확히 증명할 수 없는 자연의 특정 현상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과 감상 포인트를 제안한다.


    Editor Alex Oh

    Director ANOUK




    As an Artist

    젊은 작가로서 왕성한 전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예진 설치예술가. 그녀는 자연의 현상을 누구보다 깊게 관찰하고 고민하며 걱정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 봐도 자연은 분명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자주 보이던 청개구리가 사라지고 나비들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길이 없다. 흔하던 이끼는 고가의 상품으로 팔려 나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신예진 작가는 자연의 대변인이 되어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소를 전공하고 설치미술을 하셨는데요, 미술을 하게 된 동기와 조소에서 설치로 넘어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대미술에서 조소, 서양화, 동양화, 설치, 미디어와 같은 표현이나 경계는 이제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장르적 구분은 있겠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품 구상을 할 때,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제가 활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평면 작업과 조소, 설치 같은 매체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오래 전 인터뷰를 찾아보니 졸업생 중에서 작가님 혼자만 작가로 전향했다고 하셨더라고요. 10년 동안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겨울이었어요. 첫 개인전 때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아무도 전시를 보러 오지 못했어요. 몇 년 만의 폭설로 서울시 대중교통이 마비되었고, 차도 못 다니는 상황이 되었죠. 정말 열심히 준비했기에 아쉬움으로 가득했어요. 그렇게 좀 낙담하고 있다가 전시장에서 지인을 만났어요. 그리고는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 모습이 우연히 9시 뉴스에 나왔더라고요. 순간 깜짝 놀라서 친구들과 한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작품의 매개체로서 세라믹에 관심이 간 이유가 있을까요?
    직관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처음부터 선택했던 기법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관심 밖이었죠. 

    한동안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이 “이거 도자기예요?”, “왠지 도자기처럼 생겼네요.” 였어요. 심지어 작가들도 공통적으로 물어봤던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도대체 왜 내 작업이 도자기처럼 보이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계속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세라믹 기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관련 작품들을 좀 알아본 다음에 작품들을 다시 봤더니 제가 봐도 도자기 같더라고요. 순간, 진짜 세라믹 기법으로 만들어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궁금증과 오기가 함께 발동되었죠.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부터 멀어지면서 갤러리들은 온라인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낯설고 감흥이 100% 전달되지 않는데요. 설치 미술은 공간과의 호흡이 더욱 중요한 탓에 작가님이 많이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지난 펜데믹 기간이 작가님에 끼친 영향이 문득 궁금합니다. 어떠셨고 어떤 생각으로 지내셨나요?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전시를 특별히 더 못하게 된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작업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연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을 한다면?” 이란 질문이 시작이었어요.  

    ‘자연’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판단하던 것들이 잘못되었기에 인간에게 더 이상 침식되지 않으면서 자생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해야 해요. 인간이 더 편리하고 빠른 생산성을 위해 산업화를 이뤄낸 것처럼, 자연 역시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런 과정 중 하나가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을까요? 동물에게만 전염되던 바이러스가 갑자기 사람한테 전염되도록 스스로 변이한 과정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원인이라고 들었어요. 숙주인 야생의 동물 개체수가 적어지다 보니 바이러스가 살아남으려고 한 선택이었다는 견해가 있더라고요. 불과 만년 전만 해도 지구상의 포유류 중 10%남짓이었던 인간이 현재는 90%가 넘는 피조물이니까요. 인간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자연의 노력일 지도 모르죠.  

    한편으로는, 이런 단순한 원리에도 인간 세상이 송두리채 뒤바뀌고 ‘포스트코로나’, ’뉴노멀’이란 단어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바이러스 이외에도 산과 숲, 물과 공기, 각종 동, 식물까지도 변이 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About Work

    2012년 첫 개인전 <감각의 시간>을 가진 이후 신예진 작가는 감촉에 집중했다. 지금은 자연에 대한 기억과 오래된 감성을 불어넣은 작품으로 ‘현재진행형’인 상태. 가까이서 보면 개별적이고 독립적이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하나의 커다란 줄기이다.


    작가님에게 자연, 특히 나비는 어떤 존재인가요? 어떤 특정 나비를 형상화 한건지?
    나비는 어릴 때 잡고 놀던 자연의 생명들 중 하나예요. 특별한 의미나 특정 개체를 염두해두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 나비라는 소재에 대해 꽂히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나비라는 개체보다는 나비의 날개에 꽂힌 것 같아요. 제 작품을 자세히 보면 나비 몸통은 없고 날개만 있어요. 다른 종인 잠자리, 메뚜기 등의 날개로 이루어진 작품도 있죠. 이들은 감촉으로 남아있는 생명에 대한 기억이예요. 

    어릴 적, 분명 순수한 마음이었으나 가학적으로 곤충의 날개들을 해맑게 뜯고는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며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한 적이 있어요. 나비나 다른 곤충 작품들은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나비 말고도 이끼, 개구리, 심지어 애벌레, 새의 날개 등도 보이는데요. 모두 강렬한 색감을 가지고 있어요. 전체적인 맥이 있는 것 같은데 작가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감촉의 기억’에서 재구성한 자연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모습과 어린 시절에 감촉으로 각인된 자연의 모습은 전혀 다른 형태와 색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이 자연의 실재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자연을 하나의 커다란 ‘집’으로 여기고, 그 안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을 표현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개체를 만들다 보니 제가 만든 조금은 이상한 개체들이 살아가는 공간, 세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마치 예정된 일처럼 “자연설계 프로젝트”로 확장하게 된 것 같아요.

    자연에서 작품의 영감을 찾으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영감’보다는 자연에서 ‘소재’를 많이 찾는 편이에요. 자연물을 사진으로 찍고 수집해서 포토샵으로 하나하나 따고 변형하는 과정을 무조건 하고 있어요. 이외, 장소와 관련된 조사도 많이 필요해요. 우리 주변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발되고 있잖아요. 그들 중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형태를 찾으려고 하고, 그 형태를 빌려와서 드로잉 작품에 밑배경으로 만들기도 한답니다. 



    For Exhibition

    보기만해도 아찔하게 쌓아 올린 세라믹 타워, 그 아래 무질서하게 놓인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세라믹 파츠(parts)들은 나름의 질서와 작가의 의도 아래 차곡차곡 교차되고 있다. 이끼와 나비, 돌과 풀, 나무와 꽃, 숲과 들판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자연의 공생과 상생을 상징한다. 약 20여 점의 설치 작품들은 나무와 세라믹, 크리스탈 레진과 UV필름, 타일 등의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바라보는 각도와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여운을 준다. 

    신예진 작가에게 이번 <비결정론적인 비주기의 흐름> 전시는 경남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열린 입주작가 보고전의 연장선이자 지웅파인아트갤러리에서의 첫 번째 설치미술 전시이기도 하다. 


    지웅파인아트갤러리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데요, 이번 전시에 대한 컨셉트를 알려주세요.
    2021년 초에 김해문화의전당에 4번째 개인전을 열었어요. 이번 지웅 전시는 바로 이전에 치렀던 <자연(自然)스러운 설계>의 연장으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이를 컨셉트로 잡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자연(自然)스러운 설계>의 경우 ‘자연의 입장’을 고민해봤어요. 궁극적으로, “도시를 재개발할 때 그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죠. 인간이 자연에게 행했던 가학적 형태의 도시개발 사업을 되짚어보자는 취지였어요. 사실, 지웅의 이번 <비결정론적인 비주기의 흐름> 전시는 좀 특별한데요. 제가 그동안 ‘자연설계 프로젝트’라는 큰 주제로 전시했던 작품들의 집합이라고 할까요? 첫 전시였던 <감촉으로 재구성한 자연>에서부터 ‘자연설계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의 총정리입니다. 특히, 세라믹으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자연 도시 형태를 메인으로 두었어요. 그 외, 아카이브 형식의 드로잉과 아트상품들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예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작품들인가요?
    대다수가 기존 작품이지만 설치하는 형식이 바뀌기 때문에 신작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지웅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까요? 관객들이 어떤 점을 고려하고 감상했으면 하는지 알려주셔요.
    아무래도 어린시절 자연을 보면서 처음 느꼈던 경외감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색도 강렬했고, 크기도 거대했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두려움을 주던 존재가 바로 ‘자연’이었어요. 이렇듯,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개개인의 어린시절 속 자연의 모습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전시기간: 2022.05.16 – 07.15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 대표번호
    : 070 4260 1576




    5Another chapter: Pers at Hanok겨울의 하늘이 흘러가고
    봄의 바람을 데려오는 이때.

    퍼스의 영감은 여행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여정과 함께 퍼스가 선택한 여행의 본질은 다름 아닌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 한 해가 바뀌어 2022년의 새로운 시작을 여는 퍼스의 이번 나들이는 담장이 낮아 파란 하늘이 보이고 돌담과 나무의 정겨움으로 가득한 한옥이었다.





    서울의 북쪽,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그 옛날 부유하고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살았던 동네, 북촌. 이곳은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과 상권이 활발하던 종로가 인접해 있어 언제나 번화하고 북적거렸다.

    다행히,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대다수의 한옥들이 잘 보존되어 북촌 한옥마을이 형성되었고,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불러모으고 있다. 퍼스는 문득 겨울과 봄의 미묘한 갈림길에서 인왕산이 훤히 보이고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북촌의 한옥 BNB에 잠시 머물렀다.





    겨울의 하늘이 흘러가고 봄의 바람을 데려오는 이때에, 한옥의 나지막한 처마 아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펼쳐 놓고 그대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소근거리며 달그락달그락 소꿉놀이를 했어요.” 

    By Art Director ANOUK






    자연이 숨 쉬는 한옥




    돌과 나무, 풀과 흙으로 만들어진 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 아닐까? 한옥이 그러하다. 한옥은 자연의 요소들이 모인 작은 산과 같다. 나무와 돌 위에 앉는 것은 그루터기와 바위에 앉는 것과 같고 처마 위 구름을 보는 것은 마치 나뭇가지 위에 걸린 구름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잘 짜인 한옥에 들어서면 우리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든다.



    퍼스가 하룻밤을 보낸 한옥은 수려했다. 듬성듬성 일렁거리는 해거름도 없었고 서까래는 튼튼했으며 툇마루와 사랑방, 그리고 행랑채도 있었다. 현재와 맞물려 불편한 것은 해소되어서 좋았다. 지치고 힘들어 하는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휴식과 편안함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던 북촌의 어느 한옥. 퍼스 역시 이곳에서 퍼스의 정체성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다.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



    퍼스가 소개하는 오브제나 포스터, 아트북, 빈티지 소품들은 기본적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괴리된 공간을 우리가 염원하는 소소한 기쁨으로 채우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남겨 놓지 않았기에 무엇을 손에 넣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에 퍼스의 일은 의미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 큐레이션 하는 것. 한옥은 이런 퍼스와 매우 잘 어울렸다. 



    한지 발린 문을 연 채로 찻잔과 과일 담긴 접시가 정겨웠고, 작은 돌 연못 위에 무심코 놓은 거장들의 아트북이 스스럼없이 동화되었다. 투명한 유리컵은 뿌연 하늘을 말갛게 보이게 했고 선명한 포스터의 색감은 무채색의 한옥을 밝혀주었다. 모든 작업이 다 끝난 한옥에서의 밤. 겨울의 끄트머리와 봄의 가장자리에서 별들은 빛났고 부끄러운 달은 반만 모습을 드러냈다. 퍼스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Editor Alex Oh

    Director ANOUK



    45th Special Exhibition : Winter, Flower빛과 우연이 빚어낸 감각의 세계
    황성원 작가의 렌즈 너머의 세상은 하늘, 빛, 나무, 꽃과 같은 자연이다.

    빛과 우연이 빚어낸 감각의 세계

    Winter, Flower

    황성원 작가의 렌즈 너머의 세상은 하늘, 빛, 나무, 꽃과 같은 자연이다. 덕분에 그녀의 사진에는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형태의 흥분과 호기심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계절이라는 시간의 변화를 통해 가장 민감한 자연과 그 바깥 풍경을 작가는 그만의 떨림과 시선으로 명민하게 잡아낸다.


    Editor Alex Oh

    Director ANOUK




    As an Artist

    몸이 허락하고 하늘이 온화한 시간 동안 황성원 작가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대부분 그녀가 사는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쉰 없이 셔터를 누르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작은 공간이 보여준 세계는 거의 무한대의 우주나 다름없다.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통증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움직이는 모든 관절이 아파요. 앉고 서는 일이 고통스럽습니다. 스마트폰을 터치할 때, 마치 전기고문처럼 손가락이 저릿하고 머리가 짓눌리는 압박감이 있어서 대화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속도 늘 안 좋은 데다가, 체온 조절이 잘 안되니까 통증이 배가 돼서 순식간에 몸이 확 가곤 하죠. 그래서, 사람들과 약속 잡기가 망설여져요. 가장 힘든 두 가지라면 24시간 통증을 계속 참아야 하는 점과 아프지만 각오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저 참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답니다.

    사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빛! 너무 아파서 죽고 싶었을 때,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얼음장 같던 몸과 마음을 따스한 온기로 감싸주는 느낌이 마치 제가 빛의 일부분이 되는 것 마냥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는 심정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위해 오랜 시간 정말 무심하게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이세요.
    물성 작업을 하던 시절에는 사물을 보면 머리 속에서 이미 작품이 만들어지곤 했어요. 바로바로 계산이 되었던 거죠. 그와 달리 사진은 렌즈를 보지 않고 셔터를 누르니까 볼 수도 없고 추측할 수가 없는 것들이라 솔직히 어떤 결과물일까 기대가 더 커진다고 할까요? 사진을 찍는 동안 빛과 내 자신이 동화되었던 순간이 궁금해서 두근거린답니다. 마치 포장된 선물을 열 때처럼 말이죠.



    About Work

    마치 빛과 바람을 분주히 쫓아 완성한 작품 속 숨은그림 찾기 같은 것이지만, 하늘을 캔버스 삼아 빛과 바람의 물감으로 빚어내는 황성원 작가의 사진에는 따뜻한 에너지와 희망이 깃들어 있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무의식, 비현실적, 우연성, 회화적, 미지의 몽환을 위해 빈틈없는 파동과 왜곡, 그리고 격렬한 운동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한 움직임인가요?
    생명력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빛을 따라갔지만, 결국 그 행위는 생명을 갈구하는 몸부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20대에도 “I’m still alive”라는 작업을 했는데, 극심한 통증이 저를 괴롭힌 이후에는 들이마시고 내뱉는 공기 한 모금마저 간절하게 다가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연의 생명력에 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존재예요.

    과거와 현재를 뭉뚱그려 본다면 과거와 현재의 작업 반경, 공간, 활동 범위의 제한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그림이든 설치든 물성 작업을 할 땐 재료와 크기에 거침이 없었어요. 캐비닛 두 짝을 가지고 씨름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집 근처 정원에서 사진 찍는 게 최선의 반경이 됐죠.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피사체를 찍는 것이 너무 한정적이지 않나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순간 사진 속 모든 이미지들이 살아있는 피사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예요. 같은 장소, 같은 자연물이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형태와 색이 달랐고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제스처는 언제나 새로웠습니다. 또한, 그들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성장하죠. 결코 멈춰 서는 법이 없어요. 가끔 버스나 자동차를 탈 때도 사진을 찍는데, 의자의 높이, 속도에 따른 빛의 변화는 꽤나 멋진 재료가 되어요. 물감 대신 빛과 속도로 피사체를 뭉개서 본성은 변하지 않되, 또 다른 풍경이 되도록 만드는 작업인 셈이죠. 

    작가님은 피사체의 어떤 점에 매료되나요?
    빛과 속도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형태와 색은 저절로 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나뭇잎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저 또한 같은 시공간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사라지고 자연과 하나 되어 새로운 “나”로 탄생하는 거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사진을 마치 추상화처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최고의 순간을 찾으려면 수만 번의 셔터를 눌러야 할 것 같은데요. 작가님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합니다.
    빛을 따라 저절로 몸을 움직여요. 이때 렌즈는 정면보다 하늘을 향하도록 합니다. 렌즈를 피사체와 빛에 대고 문지르는 듯한 행위는 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리는 맥락과 같아요. 그렇게 하면 전혀 생각치 못했던 또 다른 풍경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서울문화재단 입주작가로 선정된 것 이외에도 수많은 그룹전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과 2021년 미술주간 PATRON 랜선 작가 및 spaceD9 2019년 신진작가로도로 선정되는 등 꾸준히 인정을 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요?
    현실적인 걱정없이 작가생활 하면서 예술을 즐기는 것이예요.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그게 제 삶이든 작품이든 상관없어요. 스무 살 때, 미국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적이 있어요. 깜짝 놀랐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나중에 알았는데,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훌륭한 작품에 대한 감동으로 인해 인간이 눈물을 흘리다니, 엄청난 깨달음이었죠. 이후, 2018년 제 개인전 때 어떤 분이 오셔서 우는 모습을 봤어요. 제 설치 작품에 본인의 삶이 동화되었던 모양인지 저 또한 감명받았죠. 그렇게 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 위로 받고 위로해주면 좋겠습니다.



    For Exhibition

    황성원 작가의 겨울과 꽃은 신비롭고 화려하다.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영역과 결합하여 선보인 그녀의 다섯 번째 전시회 <Winter, Flower>. 겨울과 꽃을 주제로 만나는 18점의 빛과 그림자의 퍼레이드는 11월 22일 공개된다. 


    <Winter, Flower>의 전시 의도나 방향성에 대해 알려주세요.
    지웅파인아트에서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기획하기를 원했고, 저도 그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지수 아트디렉터의 노트를 받았을 때는 놀랍게도 제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아 코 끝이 찡하기도 했어요. 특히 “앞으로 나아가 끝내 피우려 하는 그 숙명이, 그렇게 나를 아름답고 벅차게 하는구려. 그대의 마음이 참 맑은가 보오.”라는 내용이 심금을 울렸어요. 이 구절처럼 삶이 힘겹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고통스럽지만은 아니어서 숙명처럼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꽃을 피우는 맑고 단아함으로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번 제 작품에서는 빛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요?
    겨울과 꽃, 두 부류로 나눠질 예정인데 거기에는 화병과 같은 반짝이는 이미지도 있고, 바람에 휩쓸리는 나무들도 있을 거예요. 지금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하는 것처럼 자연과 도시도 거기에 속해서 함께 가고 있는 의미를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과 도시가 이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이로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 구성에도 이런 의미가 포함되도록 노력했어요.







    ■ 전시기간: 2021.11.23 - 12.24
    ■ 관람시간
    : 10:00 ~ 18:00 (MON - FRI) SAT, SUN, Holidays OFF
    ■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별도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예약은 네이버 예약(url.kr/i2r1sb)에서 가능합니다.



    34th Special Exhibition : Call Me by Your Name타투이스트의 캔버스, 작품이 되다
    회화적 터치로 타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타투이스트 공그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중학생 소녀는 자신의 미래를 일찌감치 결정했다. 그때부터 변함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공그림(본명 공지선) 작가. 달라진 건 캔버스가 아닌 인간의 몸이 되었을 뿐 그녀는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그림을 좋아하는 타투이스트 공그림은 기본적으로 드로잉을 비롯한 페인팅, 컬러링의 영역이 전혀 낯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Q1 : 공그림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투이스트로서 활동하는 닉네임에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제 성이 공이니까 이 둘을 합해서 ‘공그림’이 된 것이죠.


    Q2 : 어떤 동기로 어떻게 타투이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일러스트 작가가 막연한 꿈이었습니다. 금속공예를 전공했지만 언젠가는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갖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대학교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3학년 즈음에는 전공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고 학교생활에 치이다 보니 드로잉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만난 동료 선배에게 우연히 제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불쑥 타투를 한번 배워보라고 하면서 왠지 저와 잘 맞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그 선배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고 친구의 도움으로 타투 수업을 하는 작업자분을 알게 되어 바로 포토폴리오를 보냈어요. 다행히 서류가 통과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엄청난 동기가 있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타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경우예요. 하면 할수록 이 분야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애정도 솟아나면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Q3 :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어느 하나에 특정되진 않아요. 지극히 일상적이고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주로 관찰합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미술가들의 아트북, 빈티지한 동화책 삽화들, 꽃과 식물들의 자연스러운 라인들과 색감,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풍경 등을 통해서도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Q4 : 타투이스트로서 미래의 빅 피처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과감한 작업들을 가능한 많이 해보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회화 재료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타투를 소개하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대담한 터치와 캔버스의 질감을 그대로 보는 듯한 타투이스트 공그림의 패턴은 착시효과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독특하다. 따뜻한 감성의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작업 철학은 무엇일까?



    Q5 : 옛날 타투는 어두운 단색이 많았지만 요즘은 컬러가 다양하게 들어가고 매우 사실적인데요. 작가님의 타투는 마치 도화지에 그린 그림 같습니다. 작가님의 타투 특징을 설명해주세요.

    ‘타투를 종이에 있는 그림처럼 표현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과 이미지 묘사들이 아닌 투박하면서도 진짜 색연필, 오일파스텔, 콩테로 그린 것 같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피부에 표현하는 것이 제 작업의 포인트예요. 그 외에는 색감이 밝고 다채롭지만 과하지 않은 컬러감이 아닐까 합니다.



    Q6 : 꽃, 식물, 과일 등의 정물 소재가 대부분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양이 타투는 반려묘에 대한 애정인가요? 

    저는 주로 일상에서 기쁨을 주는 요소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길 가다가 맘에 드는 식물이나 예쁜 꽃,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고 집에서 꼭 그려봐요. 반려묘는 두 마리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제가 그 아이들을 보기만해도 너무 행복해서 타투 도안으로도 종종 그리게 되네요. 


    Q7 : 오일 파스텔 같은 재료의 질감을 타투에 응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른 타투이스트들이 하지 않던 새로운 방식을 원했어요. 기존과 다른 스타일을 창조해서 저만의 타투 장르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는 평소 그림을 그릴 때 선을 굵직하고 시원시원하게 그리는 편인 데다 좋아하는 회화 재료가 오일 파스텔이어서 이런 사항들을 응용해서 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타투 도안을 고민했죠.


    @gong_greem 'Instagram' 타투 작업물


    Q8 : 요즘 타투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올라갔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타투의 반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갑갑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타투를 좋아하거나 선입견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만큼 편견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거든요. 아직은 타투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어서 의뢰하는 손님들 역시 완벽한 (도안) 선택의 자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은 화가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수 있어도 타투이스트는 그럴 수 없죠. 작가의 느낌은 살리되 손님이 생각한 주제나 느낌 안에서 그려야 해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타투에 대한 잣대를 거둔다면 의뢰하는 손님은 자신을 좀 더 편하게 표현할 수 있고, 작업자는 재미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거라 생각합니다.


    Q9 : 타투이스트로서 힘든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람 피부에 작업하기 때문에 계획한 그대로 완성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고민이나 걱정을 떨쳐버리고 지금 주어진 작업을 최대한 멋지게 마무리하는 거죠.



    2년 전 서초동에서 개인전을 자그맣게 열었다는 공그림 작가의 첫번째 공식 전시



    Q10 : 갤러리와 특별히 기획해서 쿠션, 커튼, 잠옷, 러그, 미니백 등의 라이프스타일 굿즈를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디자인을 넣을지 결정하셨나요? 컨셉이 있는지 아니면 랜덤인지 궁금합니다.

    디자인은 일찌감치 결정되었어요. <인도로 간 파리지엔> 박소영 대표님과 갤러리 이지수 이사님과 함께 고민하여 멋진 도안들로 골랐습니다. 컨셉이 딱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각 제품의 형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그림으로 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늘어지는 커튼에는 길게 뻗은 백합 그림을 넣었답니다. 


    Q11 : 타투를 위한 기존 도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 전시를 위해 캔버스 작품으로 새로 작업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요? 

    네, 맞습니다. 이전까지는 크기가 큰 그림을 많이 그리지 않아 이번 전시를 위한 작업을 특별히 새롭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준비하면서 즐겁고 흥분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번 전시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Q12 : <인도로 간 파리지엔> 박소영 대표님과의 인연을 알려주세요. 그림 전시 이외 콜라보로 함께 호흡을 맞추었는데 어떻게 성사되었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요? 

    박소영 대표님의 패브릭 작업과 글들은 그 동안 인스타그램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웅갤러리 이지수 이사님이 제 스타일과 잘 맞는 분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자고 하셨고, 그 분이 바로 박소영 대표님이셔서 놀랐습니다. 대표님은 인도에서 직접 천을 가져와 작업을 하세요. 프랑스에서 공부하시다가 여행으로 간 인도의 패브릭에 흠뻑 빠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인도 천으로 만든 소품과 의상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미팅 이후에는 박소영 대표님과 제가 공동으로 제품에 들어갈 그림을 골랐고, 그 그림을 토대로 목판화를 만들어 인도에서 만든 천에 일일이 찍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제품에 따라 목판의 크기와 찍어내는 간격도 다양해서, 굿즈 하나하나 도안의 특색이 잘 살아있어요. 


    Q13 : 작업하는 동안 박소영 대표님과 작가님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대표님과 저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둘 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타투와 패브릭 작업은 서로 상이한 분야지만 회화적인 재료의 색감이나 손으로 작업한다는 점 등은 비슷한 것 같아요. 게다가 목판화를 파고 찍어내는 것처럼 저 또한 도구로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고 있으니 어느 지점에서는 동일한 일처럼 느껴져요.





    전시기간 : 2021.09월 - 10월
    관람시간 : 10:00 ~ 17:00 (MON - FRI) 
     SAT, SUN, Holiday OFF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예약은 네이버 예약으로만 받습니다.
    https://m.booking.naver.com/booking/6/bizes/509473?area=bmp 

    Artist gong greem

    Editor Seunghae Oh

    Director ANOUK





    23rd Special Exhibition : TASTE of PLANT 2독특한 시선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원예가 박기철
    영원한 매력을 지닌 식물의 이미지를 포획하다.

    TASTE of PLANT 2

    【3rd Special Exhibition Interview】



    독특한 시선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원예가 박기철.

    그는 관람자로 하여금 식물 본연의 매력에 빠져들게 들게 하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해 영원한 매력을 지닌 식물의 이미지를 포획하기도 한다.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작가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박기철 작가. 얼핏 떠오르는 평범한 플랜트 디자이너가 아닌 식물을 바라보는 일반적 경계를 확장하는 ‘창작자’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Q1 : 전형적인 작가의 행보를 걷진 않았지만 오랜 기간 작업한 결과물들이 여러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 분야에 입문하게 되었나요?

    2011년부터 원예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식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특별한 이유가 아닌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심이었습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지속적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식물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20대에는 광고회사에서, 30대에는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인생의 계획이 있었고, 다행히 그것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Q2 : 작가님은 계절에 매우 민감할 것 같습니다. 계절마다 식물을 다루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이 다르나요? 

    계절에 예민하지만 둔하게 대응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계절타령’하는 걸 지겹게 생각합니다. 식물을 다루거나 관리하는 방법은 ‘땅, 불, 바람, 물. 마음’이면 됩니다. 즉, 해당 식물군에 맞는 적절한 '흙'을 반드시 구별해서 쓸 것. 직사광선이 아닌 '빛'이 확보된 공간에 설치하기. '통풍과 환기'는 수시로 신경 쓰고, '물' 관리 역시 해당 식물군, 사용된 흙, 노출된 환경에 따라 다르게 공급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을 대할 땐 무심하고 게으르게, 집착보다는 힘을 빼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Q3 : 식물은 생명이므로 숨을 쉬고 자라는데요, 전문가로서 어떤 기준으로 그들의 성장을 계획하고 디자인 하시나요?

    야생초목을 단순히 예쁜 화분에 옮겨 담은 다음 작업을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식재 이후, 장기간의 계획과 특정 기술/기법을 활용하는 '후반작업'을 통해 식물의 모습을 변형하는 것에 주력합니다. 식물마다 10가지 내외의 원예 기법을 활용하고, 저의 취향과 미감이 반영된 결과물을 완성하죠.






    Q4 : ‘식물의 취향’으로 이어진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의인화된 식물의 브랜딩에는 작가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브랜딩을 하면서 느낀 건 네이밍이란 결국 쉽고 명확하며 콘텐츠를 드러내면서도 장기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식물의 취향’은 특별한 고민 없이 떠오른 이름이었고, 원하는 방향과 잘 맞아 고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있게 설명하면, 우리가 생활하면서 매 순간 선택하는 ‘의식주(衣食住)’의 취향처럼 식물에게도 취향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의’란 화분일 것이고, ‘식’은 해당 식물군에 맞는 적절한 흙, ‘주’는 식물이 놓이게 될 공간인 셈이죠. 이는 ‘식물의 취향’이면서 결국 원예가 박기철의 ‘식물 취향’이기 때문에 이중적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브랜드와 공간, 전시, 책 출간을 희망했는데, 어느 카테고리에 적용해도 말이 되는 이름이 바로 ‘식물의 취향’이었습니다. 참고로, 요즘 유행하는 이름들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의 집합으로 이뤄졌거나 예쁜 말들의 조합, 자신만 아는 의미와 영문의 약자, 비문 등으로 만드는데, 저는 이런 방법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식물과 함께 작업하는 그의 영역은 흙과 땅

    이외에도 클래스와 활자, 스튜디오 등을 넘나든다.





    Q5 : 각기 다른 식물을 볼 때마다 자신의 다른 취향의 발견을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발견한 식물의 취향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의 취향이 완고하고 동일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을 작업하더라도 하나의 브랜드, 한 명의 작업자가 떠오르는 결과물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식물의 취향이 곧 저의 미감과 취향에서 나온 ‘식물의 취향'이므로 특별히 어떤 접점을 찾지 않아도, 애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Q6 : 식물을 담고 있는 화기 역시 중요할 텐데요,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분재 1세대 선생님들에게 화분을 공급하던 도예가들의 작업을 좋아합니다. 또한, 이름이나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기물들이 전국에 유물처럼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과정도 즐깁니다. 이는 스튜디오 바닥의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Q7 : 오랜 식물 작업을 통해 어떤 결과들을 얻으셨나요?

    재료의 변형, 설치의 문맥을 달리한 식물 작업을 소개해 왔습니다. 분재 혹은 야생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야생초목’이라는 식물 카테고리를 대중에게 소개한 것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Q8 : 클래스 운영은 언제 시작했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매달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별적으로 진행하는 외부 업무보다 스튜디오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좀 더 즐겁게 생각합니다. 수업은 기본 과정과 정규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본 과정의 경우 식물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진행됩니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유인물 혹은 필기 수업이 아닌, 실제 식물 작업에 집중하고 개별 수강자의 감각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평일과 주말, 오후/저녁반으로 구성돼 있고 2인 이내로만 구성됩니다. 정규 과정은 취미 및 전문가를 위한 야생초목 강좌입니다. 후반 작업 확대(특수기법), 브랜딩, 시장 조사, 콘텐츠 개발, 영업운영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






    Q9 : 슬라이드에 담긴 이미지들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디아섹 소재로 제작되는 프린티드 4점과 별도로 21점의 싱글 채널 이미지는 프로젝터를 통해 보여집니다. 이들은 특정 식물의 초상이 아닌 모든 작업의 근간 혹은 영감이 됐던 어떤 장면들을 포착한 사진 작업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Q10 :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 소개와 작가로서 관람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까요? 

    어리고 어색한 표정과 몸짓의 식물들을 장기간 계획해서 세부작업을 통해 완성하고 새롭게 발견한 식물들의 초상을 담았습니다. 판화지 계열의 특수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의 방식으로 제작하여 사진이지만 판화, 혹은 회회처럼 보이도록 의도했습니다. 식물 작업을 사진으로 전환한 것처럼 매체 사이의 특수한 경계 들이 모호해지고 무너지길 바랐습니다. 사진 작품은 총 4점이며 슬라이드 이미지가 별도로 보여집니다. 기본적으로 대상물의 크기, 재료의 질감, 설치 높이, 동선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 부분에 신경을 썼습니다.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4점의 피그먼트 프린트 작업과 21장의 싱글 채널 이미지의 재생 순서 정도입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기 보다 공간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타나거나 발견되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로, 제 작품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전혀 없고 의미를 만드는 건 관람객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생각과 미감, 취향은 모두 다르기에 이를 비난하거나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정확한 이해를 바라지 않고, 이해를 돕는 그 어떤 설득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전시기간 : 2021.06.08 - 07.23
    관람시간 : 10:00 ~ 17:00 (MON - FRI) 
     SAT, SUN, Holiday OFF

    장소 : 지웅아트갤러리(강남구 청담동 117-13, 2F)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예약은 네이버 예약으로만 받습니다.


    Artist Kicheol Park

    Editor Seunghae Oh

    Director ANOUK





    1Pers in Itaewon : studiopers, spring모든 것에 시작은 애정으로부터라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하게 아는가 봅니다.



    취향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써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획자의 역할이란 “~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리라.





    작품을 늘여 놓은 전시를 보는 와중에도 관객은 전시된 모든 작품에서가 아니라 유독 끌리는 작품 몇 점들에게서 오는 각자의 설명을 가진 이끌림으로 영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취향은 자신이 경험한고 기억하는 감정에서 오는 충격과 완충의 도화선이지 아닐까. 작품과 관련하여 아무리 긴 설명 글과 미사용어를 붙인다 한들 개인이 갖게 되는 감정을 억지로 이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기획이라는 것에서 보편타당하고 대중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방식, 예컨데 그대의 정신세계를 편안하고 여유롭게 , 혹은 호기심 가득하게 이끌어주는 제안으로써 관심을 갖게 하고 나아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는 역할로써의 책임감이 어깨 한편에 있다.





    취향을 선보이는 일은 섣불리 할 수 없지만 인류에 대한 애정과 보다 나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성되기를 위한 마음가짐이 쉬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근본적인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생명이 돋아나는 이 계절에 진부한 감성은 접어두고 한해의 움틈에 좋은 기억들이 심어 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소중히 만들어낸 자그마한 엽서 북의 봄을 피워본다.




    그리하여

    그대에게, 그대만의, 그대를 위한,

    취향이 한 두개 생긴다면 그것으로 참 기쁠 듯 하다.


    Director by AN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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